[다산 칼럼] 아프간 정부는 왜 붕괴했나

입력 2021-09-05 17:35   수정 2021-09-06 00:46

미군 철수가 종료되기도 전에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무너진 일은 충격적이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베트남 전쟁에서처럼 패주하는 일은 나오지 않으리라고 장담한 지 며칠 되지 않아서 나온 터라, 더욱 충격적이다. 찬찬히 돌아보면 그래도 이번 일은 근본적 수준에선 예고된 참사였다.

이번 참사의 시작은 2020년 2월 카타르 수도 도하에서 맺은 미국과 탈레반 사이의 협정이었다. 미국은 14개월 안에 철군하고 탈레반은 테러리스트가 활동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아프간 정부는 이 협정의 당사자가 아니었고,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 사이의 관계에 대한 언급도 없었다.

이 협정을 주도한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은 아프간 전쟁이 지닌 뜻을 이해할 능력이 없었다. 그래서 미국에 부담이 되는 전쟁에서 발을 빼려 했다. 그리고 다른 대통령들이 끝내지 못한 전쟁을 끝냈다는 ‘업적’을 선거에 이용하려 했다. 그래서 아무런 준비 없이 철군을 서둘렀다.

트럼프의 협정이 비판을 받았으므로, 바이든은 협정과 철군 계획을 재검토해 보다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했다. 그러나 힘들지만 생색은 나지 않는 그 일을 바이든은 외면했다. 그리고 철군 시한을 몇 달 연기해 9·11 참사 20주기에 맞춰 연출하려 했다.

도하 협정의 본질은 아프간 정부를 버리겠다는 미국의 일방적 선언이다. 미군의 도움으로 군사적 균형을 유지해왔는데, 미군이 철수하면 균형이 깨질 수밖에 없다. 그래도 철군하겠다고 나섰으니, 아프간 정부와 시민들은 ‘이제 미국이 우리를 버렸다’고 인식할 수밖에 없다. 그런 인식은 ‘궁극적으로는 탈레반이 이긴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한 번 이런 결론에 이르면, 탈레반에 맞서서 싸우려는 의지는 바로 사라진다. 어차피 진 싸움이라면 도망치거나 항복하는 편이 합리적이다. 그런 생각은 모든 사람이 동시에 할 터여서, ‘탈주 현상(runaway)’이 나온다. 바이든이 철군을 확인하자 아프간 정부군은 싸우려 하지 않고 도망쳤다.

이런 현상은 일반적이다. 미국이 월남전에서 발을 뺐다는 인식이 퍼진 뒤 월남군이 무너진 일은 잘 알려진 예다. 가장 극적이고 교훈적인 것은 중국 국민당 정부군의 예다.

1940년대 후반에 국공내전이 다시 벌어졌을 때, 공산주의자들이 실질적으로 장악한 미 트루먼 정권은 국민당 정부에 공산당과의 연정을 강요했다. 그런 정책은 공산군이 힘을 기를 시간을 줬다. 공산군이 먼저 공격해서 일어난 싸움에서도 정부군이 이기게 되면 휴전을 강요했다. 그 사이에 만주를 점령한 러시아군은 공산군에 다량의 무기를 지원했다. 객관적 자료인 일본군의 추산에 따르면, 러시아군이 중국 공산군에 제공한 무기는 100만 명의 군대에 10년간 공급할 수 있는 양이었고 미국이 중국 정부군에 제공한 것은 많아야 50만 명의 군대에 반년간 공급할 수 있는 양이었다.

미국은 중국 정부가 자기 돈으로 구매한 무기도 제대로 공급하지 않았다. 온갖 핑계를 대면서 선적을 늦추다가 일부를 선적했고, 가까스로 중국에 닿은 무기들도 태반이 불량품이었다. 그런 무기들을 받고 낙심하는 정부군의 모습을 지켜본 미군 장군은 그런 미국의 배신이 “낙타의 등을 부러뜨린 마지막 지푸라기”였다고 술회했다.

미국의 원조 거부로 전력이 약화되고 미국의 배신으로 사기가 떨어지자, 내전에서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이 정부군에 널리 퍼졌다. 그래서 정부군은 강인하게 싸우지 않고 전황이 불리해지면 공산군에 항복했다. 중국 정부군은 중일 전쟁에서 우방의 도움을 거의 받지 못하면서 강력한 일본군과 8년 동안 싸웠다. 일본군의 태반을 중국 전선에 붙잡아 둬 태평양 전쟁에서 연합국이 승리하는 바탕을 마련했다. 중국 공산군은 일본군 후방에서 싸우지 않고 영역만 넓힌 터라서, 초기엔 싸움마다 정부군이 이겼다. 그렇게 강인한 군대도 우방의 배신으로 전쟁에 이길 가능성이 없어졌다고 판단하자, 한 해 남짓한 기간에 무너졌다.

아프간 사태는, 특히 아프간 정부군의 탈주 현상은, 국제 정세에 미묘한 영향을 가져올 것이다. 미국과의 동맹 관계에 크게 의존하는 대만과 한국에 어쩔 수 없이 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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